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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책고집 대표

 책 고집 대표






어르신 한 분이 느린 걸음으로 들어와 김치찌개 1인분을 시키신다. 식당 주인 말이, 하루에 두 번 씩 꼬박꼬박 와서 식사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어스름 저녁 동네 식당의 풍경이다. 문득 궁금했다. 어르신께 김치찌개 1인분을 팔면 대체 얼마의 이문을 남기는 걸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이문이 아니라 정성으로, 장삿속이 아니라 어르신 모시는 마음으로 응대하는 것일 테다. 동네 식당은 단지 음식만 파는 곳이 아니다. 정을 나누는 곳이고, 인심이 묻어나는 곳이다. 그렇게 동네 어르신은 동네 식당에서 허기 뿐만 아니라 텅 빈 마음도 달랜다.


동네 식당과 동네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며 공존한다. 동네 식당이 없다면 다리 아픈 어르신은 어디로 가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어떤 음식을 드실 것인가. 믿고 먹을 만한 음식이긴 할 것인가. 혹여 ‘1인분은 팔지 않는다’는 홀대와 손사래를 마주하고 허탈하게 돌아서는 건 아닌가. 생각 만으로도 가슴 미어지는 일이다.


동네 식당 같은 인문학 강좌를 열고 싶었다. 계획해 둔 이름은 ‘어르신 인문학’이다. 홀로 누워 계신 어르신, 양로원에서 화투장 두드리며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어르신, 몸 피 보다 큰 수레를 끌며 종일 폐지를 줍는 어르신, 한 잔 술에 왕년 운운하며 동네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꼰대 어르신. 그런 어르신들을 모셔 놓고 이야기 마당을 펼쳐보고 싶었다.


승합차 한 대 쯤 마련할 일이다. 일단 갓 지은 밥 한 끼 대접하고, 따뜻한 차도 한 잔 내어드릴 일이다. 그러고 나서 너스레 떨 듯 인문학 강의를 해보는 거다. “어머님 아버님,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선 존경을 표하고 싶다. “어르신, 신호등 지키는 것, 그게 민주주의예요. 서로 욕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좋은 말로 대화하는 것, 그게 인문학이에요.” 


그렇게 눙치는 말도 해보고 싶다. “나이 아랑곳하지 않고 혜장 스님, 초의 선사 등과 격의 없이 교유했던 다산처럼, 나이 불문 종교 불문 이념 불문 벗 되어 어울리는 것, 그런 게 인문정신이에요.” 꼭꼭 닫힌 어르신 마음 열어드리는, 그런 인문학 강좌를 열고 싶다.


지인들에게 포부를 밝혔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취지는 좋지만 그게 가능하겠느냐 되묻는다. 식사 대접하고, 강사 섭외하고, 장소 물색하려면 필시 돈이 들텐데 그걸 혼자서 어떻게 마련할 거냐며 ‘아서라, 아서라’를 연발한다. 와중에 지방자치 단체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말에 혹해서 찾아갔더니 대뜸 “표 안 되는 어르신들 말고 청년이나 학부모들을 모아 놓으면 얼마든지 도와주겠다”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튀어나오려는 욕지기를 억누르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가난하고 외로운 어르신들 위한 인문학 강좌 꾸리기가 이리 힘들고 어렵다. 되레 어르신들에 대한 편견만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광화문에 나가 막걸리 얻어 마시는 재미로 태극기 몇 번 흔들었다고 ‘적폐’라고 낙인을 찍고, 신호등 안 지킨다고 몰상식하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고 아무에게나 소리 지른다고 ‘꼰대’라고 외면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가. 평생 일만 하신 분들이다. 전쟁터로, 광부로, 건설노동자로 외국 나가서 외화벌이를 해 온 분들이다. 중동 모래바람 맞으며 하루 20시간씩 일해서 사막에 건물을 짓고 수로를 뚫은 분들이다. 안 먹고 안 사 입고 아끼고 아껴서 자식 뒷바라지한 분들이다. 정작 당신들은 가보지 못한 대학을 자식들이라도 나와야 한다며 주야장천 일해서 아낌없이 퍼주기만 하신 분들이다.


뒷 방 노인네, 잔소리 꾼, 꼰대, 적폐라고 낙인 찍을 게 아니라 이제라도 어르신들 모셔 놓고 사람 사는 이야기 나누려고 한다. 예산 쓰는 분들은 표 되는 사람만 상대한다고 하니 그리하시라. 인문 독서 공동체 ‘책 고집’은 다르다. 책 고집의 꿈은, 동네 식당 같은 어르신 인문학을 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2022.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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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13 16: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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