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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역대 대한민국 정부 가운데 출범 시 국민 통합을 내세우지 않았던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의 상징조작 수준을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 통합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경우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 국민 통합이란 대체로 다양한 인종적·지역적·종교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일정한 사회규범과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국민의 잠재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결 과제다.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국민 통합을 위한 처방이 똑같을 이유는 없지만, 각계각층의 의식 수준에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 일찍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문제를 만들어낸 의식 수준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충고한 것은 국민 통합을 추진하는 데도 적용된다. 통합을 지향한다는 것은 현실이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는 것을 방증하며, 이런 상태에서는 서로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감정 때문에 사회 전반의 의식 수준이 하락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과 고위 관료로 대변되는 공공부문의 파워엘리트와, 기업인과 언론인으로 대변되는 민간부문의 파워엘리트에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지금 향유하는 모든 특권을 '적법하게' 성취했다는 에고 중심의 오만에 도취해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공익을 내세워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에 위선적 의식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그렇기에 이들 대부분은 의식과 무의식의 갈등으로 인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제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파워엘리트 집단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이들에게서 뚜렷한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특권과 지대 추구를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면 소위 '진보'에서 '보수'로 파워엘리트 집단을 상징하는 명칭만 바뀐 것일 뿐 이들도 봉건적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한국 사회가 여전히 '조선'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국민 통합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여전히 정부가 모든 국가적 과제를 주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실과 예측조차 불가한 미래를 감안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온정주의적 정부가 아니라 스마트한 정부다.

  • 자기조직화 원리에 의한 창발 현상이 빈번한 복잡계(complex system)인 현대사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 지난 정부는 이 점을 철저하게 무시한 채 부동산 정책을 포함해 각종 미숙한 정책들을 밀어붙여 국가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이것이 지난 정부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이다.

    현재 한국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바닥 모를 추락의 기로에 서 있다. 새 정부의 파워엘리트들은 이 점을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껴야 한다. 이런 바탕에서 새 정부는 국민 통합을 위한 완결된 청사진을 제시하려 하기보다는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고 앞으로 부닥치게 될 여러 난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큰 상금을 걸고 '국민 통합을 위한 장단기 과제와 해법'을 널리 공모(公募)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 이런 문샷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소위 진보·보수 두 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다른 진영에 속한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다소나마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국민 통합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 또한 이런 유형의 공모는 대의민주주의의 고질적인 약점과 한계를 보완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톱다운(top-down) 방식의 국민통합안을 고집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국민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다. (매일경제 2022.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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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23 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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