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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근 /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굥조가 위험한 이유
  • 기사등록 2022-04-22 17:59:13
  • 기사수정 2022-04-22 1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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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방개혁연구소장





최근 한국인 가운데에는 한미일이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는 냉전 당시와 비교하여 한반도 안보를 훨씬 위험하게 만드는 성격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정부의 한미일 공조 동의는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비교하여 훨씬 심각한 사안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훨씬 잘못된 의사결정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미일 공조에 동의하는 경우 한국인들 내부에서 강력한 반미감정이 고조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미동맹 측면에서조차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일 공조는 반도체와 같은 비군사적 성격으로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군사적 성격의 한미일 공조는 곤란할 것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처럼 한미일 공조는 중국을 겨냥한 성격이다.


먼저 냉전 당시의 미소 패권경쟁과 비교하여 오늘날의 미중 패권경쟁이 훨씬 위험한 성격이란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유럽과 동북아지역에서 대립했다. 미국과 소련이 이처럼 이들 지역에서 대립했던 것은 미국의 안보정책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자국 안보를 위협할 패권국이 유럽과 동북아지역에서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패권국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이 이들 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소련이 이들 지역에서 대립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미군을 주둔시키기 위해 미국은 한반도를 분단시켰다. 미국이 이처럼 했던 것은 동북아지역에서 소련과 대결하고자 하는 경우 일본을 미국의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으면 미국과 공조하여 소련에 대항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으면 일본을 중립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이 이처럼 주장했던 것은 일본이 미소 패권경쟁의 최첨단 지역이 되면 안 될 것이란 인식 때문이었다. 미소 패권경쟁에서 일본이 불바다가 되는 현상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란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시키고자 하는 경우 첫째, 한반도를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시킨 후 남한 지역을 공산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반공지역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둘째, 남한 지역 국민들로 하여금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염원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참조: 권영근, 『한반도와 강대국 국제정치: 미국의 한반도정책을 중심으로(1943-1954)』(행복출판사, 2021), pp. 54-64. 


결과적으로 보면 한반도를 분단시킨 후 남한 지역을 반공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1943년 루주벨트가 한반도 신탁통치를 주장했던 것이다. 필자가 밝힌 여러 자료를 보면 미국과 소련은 얄타에서 38선 분단에 비밀 합의했다. 38선 이남 지역에 미군이, 이북 지역에 소련군이 진주한 후 신탁통치 방안을 놓고 미소가 협의할 예정이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를 놓고 협의했다. 


당시 미 군정장관 하지는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 38선을 중심으로 영구 분단시킨 후 남한 지역을 반공성향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루먼이 이 같은 하지의 주장을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1945년 8월 15일 남한 지역에 반공 성향의 단독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그러자 제주도, 여수/순천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외세 철수를 주장하는 운동이 격렬히 전개되었다. 미국은 이들을 가혹하게 진압했다. 반공성향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미국의 세계전략 측면에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남한지역에 반공성향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고 미군을 한반도에 주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수/순천, 제주도 사건을 가혹하게 진압했음에도 불구하고 1949년 제헌 국회의원 70여 명이 한반도에서 외국군을 철수하는 법안을 상정할 정도로 조선인들이 외국군의 한반도 주둔에 반대했다.


남한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염원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외에도 일본 및 서독과 같은 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자 하는 경우 이들 국가 국민들이 미군의 주둔을 염원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하려면 자국 내부에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는 경우 공산세력의 위험으로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수 있을 것임을 이들 국가 국민에게 절감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하고자 하는 경우 공산세력과 미국이 핵전쟁에 못미치는 수준에서 치열한 방식으로 싸울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6.25전쟁이었다. 6.25전쟁이 3년 동안 참혹한 방식으로 진행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6.25전쟁은 소련에 대항한 패권경쟁에서의 승리를 염두에 둔 질서를 정립하기 위한 성격이었다. 6.25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은 미일동맹, 한미동맹 을 체결했다. 이외에도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대만, 태국과 동맹을 체결했다. 나토를 강화시킬 수 있었다.


아무튼 6.25전쟁을 통해 정립한 질서를 이용하여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냉전 당시 미국은 유럽에서 그리고 동북아지역에서 소련의 세력팽창을 저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동북아지역에서의 소련의 세력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최전선 지역이 한국이었다.


한국 입장에서 냉전 당시의 미소 패권경쟁과 비교하면 오늘날의 미중 패권경쟁은 훨씬 위험한 성격이다. 미소 패권경쟁과 비교하여 미중 패권경쟁이 대단히 위험한 성격이란 사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중국이 현상변경 세력이란 사실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은 남중국해, 대만 및 동중국해에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남중국해의 광활한 해역이 자국의 영해라고 주장하며 이곳 지역에 인공섬을 건조했다. 중국인들이 대만 복원을 염원하고 있다. 일본이 점령하고 있는 동중국해의 센가쿠열도가 중국 영토라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이들 지역과 해역 점령을 위해 첨단 전력을 건설하는 등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 같은 중국의 노력 저지를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냉전 당시 소련은 현상유지 세력이었다. 소련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동유럽과 한반도에 완충지대를 둔 것이었다. 미국이 현상변경을 추구하지 않는 한 소련이 먼저 도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미국 또한 현상 유지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소련을 먼저 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결과적으로 냉전이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둘째, 소련이 유럽세력이었다면 중국이 동북아지역 세력이란 사실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바처럼 소련의 주요 관심은 유럽 지역에 있었다. 소련군의 주력이 유럽 지역에 배치되어 있었다. 미국 또한 유럽에 방대한 전력을 배치하고 있었다. 미소가 전쟁을 한다면 한반도가 아니고 유럽지역에서 전쟁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유럽지역에서조차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비좁은 유럽지역에 나토와 바르샤바 동맹국 군대 수백만이 집결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소 양국이 수천발의 핵무기를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 이 전쟁이 곧바로 핵전쟁으로 비화되면서 유럽문명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조장한 6.25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재차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과 비교하여 훨씬 낮았다. 그런데 유럽에서조차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셋째, 냉전 당시 주요 분쟁 지역인 유럽에 많은 인구와 재산이 밀집되어 있었던 반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주요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 대만 및 동중국해 주변에 인구와 재산의 밀집 정도가 매우 낮은 수준이란 사실 때문이다.


유럽 지역과 달리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및 대만 주변은 육지가 아니고 해상이다. 이들 지역에서 제한전을 벌이거나 제한적인 수준의 핵전쟁을 벌이는 경우에도 많은 인명과 재산이 파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는 냉전 당시 유럽에서 미소가 전쟁을 벌일 가능성과 비교하여 미국과 중국이 이들 지역을 놓고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훨씬 높음을 의미한다.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를 포함한 미국의 많은 안보전문가들은 이처럼 말하고 있다.


한미일 공조 강화는 이들 분쟁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당시 한국군이 참전해야 할 것이란 의미다. 이처럼 참전하는 경우 한반도로 분쟁 지역이 확대될 것이다.


넷째, 냉전 당시 소련의 GDP는 미국과 비교하면 기껏해야 30% 수준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GDP는 미국의 70% 이상이다. 2030년 이전에 중국의 GDP가 미국을 상회할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국력에 입각하여 오늘날 중국은 세력팽창 목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우주, 사이버, 공중, 지상 및 해상 전력을 군사력을 건설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일각에서는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공조체제를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 않아 보인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짓인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6.25전쟁 이후의 냉전 당시에도 일본이 소련에 대항한 한미일 공조에 극구 반대했다는 사실을 통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와 비교하여 동북아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은 상황에서 한국과 무관한 남중국해, 동중국해 및 대만 문제를 놓고 한국이 미국 및 일본과 공조할 것이라고?


냉전 당시 미국은 일본이 한반도 안보 측면에서 보다 많이 기여할 수 있기를 염원했다. 한미일 3각 공조를 염원했다. 일본은 이 같은 미국의 요구를 단호히 배격했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자국을 지켜주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반도 안보에 개입하는 경우 일본 본토가 유사시 공격 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소련 위협에 대항한 한미일 공조에 극구 반대했다. 자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가장 중요한 책무로 생각해야 할 일본의 위정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 일본의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냉전 종식 이후 일본은 안보적으로 방황했다. 미일동맹 지속 유지 여부와 관련하여 고민했다. 이 같은 일본으로 하여금 미일동맹 지속 유지를 결심하게 만든 주요 사건은 1996년의 양안사태였다. 


일본인들이 정서적으로 지원하고 있던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미사일 공격, 미 항공모함의 대만 해역 출현, 이에 대한 중국의 격렬한 반응을 보며 일본은 미일동맹 지속을 결심한 것이다. 특히 중국이 일본이 점령하고 있는 센가쿠 열도 반환을 주장하며 미일동맹 지속을 결심했다. 소위 말해 중국을 잠재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의식하면서 등장한 개념이 한미일 3각 공조다. 이 같은 한미일 3각 공조 개념이 미국의 주요 문서에 등장한 것은 1999년 3월이다. 1999년 3월 리처드 아미티지가 주관하여 작성한 "A Comprehensive Approach to North Korea"란 제목의 보고서에서는 북한을 겨냥한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조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북한은 중국이었다. 한편 1999년 빅터 차(Victor Cha)는 Alignment despite antagonism: the United States-Korea-Japan security triangle란 제목의 책에서 한미일 3각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한미일 3각 공조 구축 노력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2000년 여름 한국국방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영문저널인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에 기고한 "US-ROK-Japan: Why a “Virtual Alliance” Makes Sense"란 제목의 글에서 랄프 코사(Ralph A. Cossa)는 한미일 3각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미일 3국이 가상의 동맹국과 다름이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서는 북한 위협 대비 차원에서의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조했지만 중국이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3각 공조가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위협 대비를 암시한 것이다.


2021년 일본 정부는 미국의 랜드연구소를 통해 한미일 3각 공조 함양을 위한 세미나를 주관했다. 그 결과가 "The US-Japan Alliance and Rapid Change on the Korean Peninsula"란 제목의 책자로 발간되었다. 이 책자의 서문 첫 귀절에는 미국과 일본 안보 측면에서 한반도처럼 중요한 지역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미일 3각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의 것이었다.


이 같은 한미일 3각 공조 노력은 아들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에 이르는 미국의 일관된 한반도 관련 국가안보전략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 위협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아들 부시 당시였다.


북한이 1차 핵실험한 2006년 10월 9일 직후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라이스는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조했다. 다음에서 보듯이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정책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이는 한미일 3각 공조 노력이었다.


"한국에 관한 오바마와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가운데 연속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는 미사일 방어, 정보 공유 그리고 여타 국방 관련 노력을 포함한 한국, 미국 및 일본의 3각 공조 심화였다.(If there is an area of continuity between the Obama and Trump administrations’ national security strategy as concerning Seoul, it is to “deepen the tr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South Korea, and Japan, including missile defense, intelligence-sharing, and other defense-related initiatives.)"


출처: JY Lee, The Geopolitics of South Korea-China Relations: Implications for US Policy in the Indo-Pacific, 2020 November


사실, 재임 기간 8년 동안 오바마는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 사건을 포함한 한반도의 모든 사건을 이용하여 남북한 긴장을 조성하고,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을 강화시켰으며, 한미일 3각 공조를 공고히 하고자 적극 노력했다. 트럼프 또한 이처럼 노력한 것이다. 트럼프는 한미일 3각 공조가 중국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성격임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의 의문은 냉전 당시 한미일 3각 공조를 극구 거부한 일본이 냉전 종식 이후 한미일 3각 공조를 적극 추구한 이유가 무엇인가?란 부분이다. 이 같은 일본의 요구에 미국이 동조한 이유가 무엇인가?란 부분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냉전 당시 아태지역에서의 소련의 세력팽창이 휴전선을 통해 이루어진 반면 냉전 종식 이후의 중국의 세력팽창이 광활한 태평양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소련의 세력팽창은 북한군의 남침 형태로 진행되고, 이 같은 북한군의 남침에 한미 연합군이 대항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컸던 반면 중국의 세력팽창은 미국과 일본이 중국과 직접 대결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휴전선을 통한 북한군의 남침이 일본의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던 반면 중국에 대항한 싸움으로 일본 본토가 직접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센가꾸 열도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격돌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본토가 중국의 직접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일본의 정치가들 입장에서 보면 중국과의 싸움을 통해 일본 본토가 초토화되는 현상은 가능하면 저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한 개념이 한미일 3각 공조란 개념인 것이다. 한미일이 중국에 대항하는 경우 유사시 일본이 아니고 한반도가 불바다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안보전문가들이 미중 패권경쟁에 관해 저술한 책들을 보면 대만, 남중국해, 동중국해 그리고 한반도가 분쟁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대만, 남중국해, 동중국해는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이다.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미국의 전문가들이 한반도를 분쟁 가능 지역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유사시 일본과 미국을 대신하여 한반도를 희생시키겠다는 것이다.


1999년 이후 미국과 일본이 한미일 3각 공조에 목을 메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한미일 공조 강화는 유사시 미국과 일본을 대신하여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발상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한국이 이처럼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미국과 일본을 대신하여 이처럼 당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 가운데에는 북한 위협 대비 차원에서 한미일 공조 운운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보인다. 북한 위협 대비 차원에서 보면 주한미군조차 필요 없을 것이다. 무슨 한미일 공조 강화인가?


6.25전쟁은 강대국 소련과 미국의 직접 대결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중 전쟁은 미국과 중국이 직접 대결하는 성격일 수밖에 없다. 이는 이 전쟁이 한반도로 투사되는 경우 6.25전쟁과 비교하여 훨씬 강도가 높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시카고 대학의 세계적인 국제정치학자 미어샤이머는 강대국 인근 국가는 강대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결코 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노력이 강대국 소련을 자극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초토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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