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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34> 지금 당장 훨씬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 기사등록 2022-04-11 21:52:37
  • 기사수정 2022-04-11 21: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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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행복’은 영어로 ‘해피니스(happiness)’인데, 이 말은 ‘happen’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벌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원에 따라 고지식하게 해석하면, 행복은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맛볼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라고 풀이되어 있다. 굳이 사전까지 뒤적이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이 뭔지, 내가 그런 상태인지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행복한지 말하기란 쉽지 않음도 느낀다.

 

행복은 사람들이 대체로 갖고 싶어 하고 추구하는 것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권력이나 돈, 명예, 건강 같은 것 말이다.

 

만일 행복이 권력과 비례한다면 아마도 대통령이 가장 행복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무런 지위나 영향력이 없는 서민들은 행복과는 인연이 전혀 없게 될 것이다.

 

행복이 부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면 대기업의 회장들이 가장 행복할 것이고, 생활이 아니라 생존 수준을 간신히 이어가는 사람들은 불행 그 자체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행복은 뭐니뭐니 해도 명예에 비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이 맞는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나 다 알아보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맨일 것이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가족이나 자기 주위의 몇몇 사람에 불과한 사람은 불행한 삶의 극을 달리고 있는 게 된다. 

 

만일 건강과 장수가 행복의 핵심적 요소라면, 100세 넘게 살고 있는 노인들이 가장 행복한 집단에 속하게 된다. 병실에 누워 있는 젊은이 같은 경우라면 더 할 나위 없이 불행할 것이다. 

 

이렇게 대충 살펴보면, 권력이나 부, 명예, 건강 등은 행복과 강하게 결부된듯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요소들을 별로 갖추지 못하고도 상당히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현실에서 적잖게 보니까. 행복은 이런 것들보다 오히려 주관적인 요소에 크게 좌우되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의 성격, 가치관, 취향, 사고방식이 각양각색이지만,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행복은 인간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이다.

 

국어사전의 뜻풀이에서 보듯이, 행복은 흐뭇함을 느끼는 마음 상태다. 마음이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상태, 더 간단히 말하면 만족스러움 그 자체라는 말이다. 행복을 이처럼 만족과 거의 동일시할 수 있다면, 어떠한 사람의 만족도를 측정함으로써 그가 행복한 정도도 측정할 수 있다. 만족도(행복)는 기대나 욕구를 분모로 하고 성취나 소유를 분자로 하는 분수의 형태로, 즉 “성취(또는 소유) /(÷) 기대(또는 욕구)”로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은 ‘만족도 공식’이면서 동시에 ‘행복 공식’인 셈이다.

 

이 공식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설명해보자. 만일 A라는 사람이 일정 기간에 3백만원을 벌기를 원했는데 실제 그 기간에 3백만원을 벌었다면, 소득에 관한 한 A는 완전 만족 상태, 완전 행복 상태가 된다. 3백만원 /(÷) 3백만원= 100%니까. 

 

만일 B라는 사람이 A와 똑같은 기간에 3천만원을 벌기를 원했는데 실제 그 기간에 3백만원을 벌었다면, 소득에 관한 한 B는 심각한 불만족 상태, 대단히 불행한 상태가 된다. 3백만원 /(÷) 3천만원= 10%에 불과하니까.

 

이 대비되는 사례를 통해 행복 공식이 함축하는 의미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행복도(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에는 분자를 크게 하는 길과 분모를 작게 하는 길의, 두 가지가 있다. 둘째, 동일한 성취나 소유라도 그 기대나 욕구가 다름에 따라 행복도(만족도)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이 행복 공식에서 분모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대나 욕구는 대단히 유동적일 뿐만 아니라 대체로 끝없이 커지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욕구가 채워져도 당초의 욕구는 거기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슬그머니 커지는 경우가 더 많다.

 

자기 말이 있어서 한번 타볼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던 사람이 일단 말 위에 올라앉으면 경마 잡히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경마를 잡히면 말안장을 고급스럽게 치장하고 싶어진다. 안장을 고급화하면, 이번에는 아예 말 자체를 준마나 명마로 바꾸고 싶은 생각이 생겨난다. 사람의 욕심은 한없이 늘어나는 법이다.

 

더욱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은근하고 집요하게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당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게 바로 여기에 있어요. 당신 것은 낡고 문제투성이입니다. 왜 빨리 새 걸로 바꾸지 않으세요? 무시당하는 낙오자가 되고 싶으세요?” 

 

인류의 스승들이 제시한 행복해지는 길도 행복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행복해지고 싶으면 욕심을 최대한 줄이라!”라는 것이다. 행복 공식에서 분모(기대나 욕구)를 아주 작게 만들면 분자(성취나 소유)가 아무리 작더라도 그 값(행복)은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

 

『성서』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은 어쩌면 이 행복 공식을 간결 명쾌하게 설파한 게 아닐까? 탐욕스러우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는 엄연한 사실도 명료하게 설명된다. 기대나 욕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큰데 그게 어떻게 다 채워질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대체로 성취나 소유를 증가시킴으로써 행복해지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행복해지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 우리에게는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다른 길도 있다. 성취나 소유를 늘리는 게 아니라 기대나 욕구를 합리적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자제력, 절제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욕구에서 허영심과 탐욕의 거품을 제거하고 그것이 제멋대로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좀 더 마음의 여유를 누리면서 행복에 다가가는 현실적인 길이다. 

 

만족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 보이는 여건에서도 탐욕스럽다 보니 결국 불행해지고 마는 사람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행복 공식의 의미를 깨닫고 당장의 현실에서 보다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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