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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김기춘이 전격적으로 돌아왔다. 그때 박근혜의 시대라는 것을 절감했다. 한덕수가 총리 지명을 받게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딱 박근혜가 김기춘을 불러오던 순간이 머리에서 떠올랐다. 보수 정권은 과거 회귀적 인사를 하고는 했다.


요즘 공감 능력과 관련해서 한국 톱뉴스 1번을 연일 장식하는 이준석은 청년 보수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만약 낡고 낡은 우리의 헌법이 그에게 피선거권의 기여를 제약하지 않았다면 좋든 싫든, 윤석열의 시대는 없고, 그가 당선인의 자리에 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당 대표로 갈 때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분명히 국민의힘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기운으로 대선을 치렀다. 그렇다면 첫 총리는?


한덕수 총리 지명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한동안 고민을 하였다. 좋은 점은 오랜만의 경제 인사라는 점이고, 그가 흔히 ‘모피아’로 비난을 받는 전형적인 금융 관료가 아니라는 것도 인상적이다. 금융과 실물이라는 눈으로 보면, 매우 드물게 실물에 대한 이해를 가진 경제 관료라는 것이 한덕수가 가진 희소성이다.


일부에서는 그가 로펌에서 근무하면서 받은 금액에 대해 얘기하는데, 돈 크기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에 비하면 경력도 짧고, 능력도 딱히 낫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민간 기업에서 훨씬 더 많이 받아가기도 한다. ‘업계 공정가’라는 표현을 쓴다면, 그걸 많이 벗어나지 않는 선으로 보인다.


물론 건당 인센티브 등 이면 계약이 없다는 전제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청렴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부패한 인사라고 한덕수를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액의 액수 때문만은 아니다. 한덕수는 ‘사적 직장’이라고 그가 일하던 로펌을 표현하였다. 사적인 것은 맞고, 개인의 선택 영역이기는 하다. 


일부에서는 법률 전문가도 아닌 그가 왜 로펌에서 돈을 받느냐고도 지적을 하는데, 전직 관료들이 대형 로펌에 취업하고 차량도 제공받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가 일했다는 그 사적 직장이 법률 소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많은 전직 관료들을 관리하면서 일종의 로비스트처럼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는 어두운 곳들이 있다. 법률과 경제, 두 곳에 대표적으로 어두운 밤의 세계가 펼쳐진다. 박근혜가 손잡은 김기춘은 결국 우병우와 함께 이 시대와 맞지 않는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통치하려고 했다. 망했다. 고위 경제 관료들이 로펌과 함께 움직이는 세계도 매우 어둡다. 여기에는 좌우도 없고, 오직 명예와 맞바꾼 돈 그리고 ‘이너 서클’ 속에서 움직이는 로비와 어두운 이권만이 존재한다. 


이게 관치 경제를 오래 유지했던 한국 경제에 생겨난 암종과 같은 것이다. 그걸 ‘유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 부처 내부에서도 젊은 공무원들이 그 ‘선배들’의 이런 관행을 ‘낡은 모습’이라고 반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는 한덕수가 무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사적 직장이라고 불렀던 로비의 세계는 그가 공직을 그만두고 간 곳이다. 그들은 한덕수의 지식이 아니라 그가 가진 인적 네트워크에 돈을 지불한 것이다. 그 선택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렇게 로비의 세계로 간 사람이 다시 고위직으로 가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유능은 ‘과거적 유능’이다. 경제 버전의 전관예우의 세계를 이렇게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고위 관료들에게 당신들도 로펌 같은 곳에서 적당히 로비스트로 살다가 한덕수처럼 화려하게 복귀하라고 하는 시그널이다. 마치 김기춘이 박근혜 때 다시 전성시대를 맞은 것과 같다. 사법에 전관예우가 개혁 대상이라면, 한덕수 역시 개혁 대상이지, 그 주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총리의 나이가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로펌과 함께 로비의 세계로 갔으면, 선택은 내려진 것이다. 그렇게 관직과 로비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도록 하면 정부 주도의 관치 경제가 피하기 어려운 어두운 면이 더욱 강화된다. 경제 민주화는 이제 통보식 밀실 행정에서 벗어나,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를 의미한다. 토론과 논쟁 그리고 합의는 보수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덕수의 유능함은 관치 경제의 시대, 뒤에서 로비하고 합의하고, 사람들은 과정을 알기 어려운 밀실 행정 시대의 유능함이다. 로비스트들이 로펌 출신 총리를 뒤에 업고 국정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것, 이 시대가 가야 할 길은 아니다. 그 어두웠던 관행은 이제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끊어내는 것이 옳다. 국민은 윤석열을 선택했지, 로펌과 로비스트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한덕수 총리 임용에 반대한다. 밤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사람, 정부에서 일한 것을 자산으로 부를 획득하지 않은 사람이 총리가 되어야 한다. 박근혜가 김기춘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은 비극이 되었다. 한덕수 역시 새로운 비극의 시작이 될 것이다. 국민들은 점점 더 민주주의의 밝은 세계에 익숙해지고 있다. (경향신문 2022.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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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11 17: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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