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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윤 인천대 전 객원교수 인터뷰, "철학적 질문해야 과학선진국"
  • 기사등록 2021-12-02 21:39:52
  • 기사수정 2021-12-02 21: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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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질문해야 과학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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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제윤 인천대 前객원교수


"R&D 100조 시대 창의적 연구, 철학적이고 비판적인 사고필요"
"훌륭한 업적 남긴 과학자는 철학자...연구자도 철학공부 해야"


박제윤 전 인천대 객원 교수가 인터뷰를 통해
박제윤 전 인천대 객원 교수가 인터뷰를 통해 "선진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철학과 과학이 함께 가야한다"고 강조했다.[사진=김지영 기자]

"창의적 연구를 하려면 철학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연구를 통한 질문으로부터 철학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자신의 연구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모방자가 될 뿐입니다. 과학선진국은 과학자의 철학적 질문으로부터 나옵니다."

과학과 철학의 대화와 만남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박제윤 인천대 기초교육원 前객원교수가 본지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과학을 철학적으로 반성해 보지 못한 과학자는 조수나 모방자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철학자는 어리석은 철학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콜링우드의 말을 소개하며 "선진과학기술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과학과 철학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우리나라 철학은 동양사상에 의해 '행복한 삶'에 너무 각인돼 있다. 하지만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바른말을 하다 죽었다. 의미 있는 삶과 연구,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철학이다. 과학자들이 철학적인 사고를 갖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박제윤 교수는 경제성장 열망이 컸던 시기 학창시절을 보냈다. 집 앞 고속도로가 생기고 댐과 발전소,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뉴스에서 '공장에서 일할 기능공이 부족하다'는 보도를 매일 봤다. 그야말로 한국경제가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걸 체감한 세대다. 하지만 그는 "위기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돈이 전부인 사회가 되어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과 연구에 대한 가치관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그런데 막상 철학과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과학철학에 매료되었습니다. 칼 포퍼, 토머스 쿤 등 철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과학을 잘 연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사람들입니다. 매우 공감했습니다. 한국과학기술발전에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관련 연구를 계속하게 됐습니다."

◆ 컴퓨터 논문을 실은 철학 학술지, 과학과 철학 오랫동안 결을 같이 하다

AI와 뇌,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아 철학과 과학기술 두 분야를 아우르며 연구하는 그는 "철학과 과학은 오래전부터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배경은 과거 과학철학사를 들여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이고 암호해독 전문가이자 철학자인 앨런 튜링은 1936년 과학 논문이 아닌 철학 전문지 '마인드'에 튜링머신 기본 아이디어를 제안한 '계산-가능한 수에 대하여, 결정문제에 적용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철학전문 학술지에 과학적 논문을 실으며 수학자로서 철학적 질문을 하고, 현대 컴퓨터 문명을 열은 셈이다.

이후 앨런 튜링은 1950년에도 또 한 번 '마인드'에 '계산기와 지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컴퓨터 이론이 과학학술지가 아닌 철학학술지에 실린 사례는 과거부터 과학과 철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임을 방증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가 있다. 그는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를 위해 '상대성이란 무엇인가'를 썼다. 하이젠베르크도 '부분과 전체'에서 자신의 평생 연구에 어떤 철학적 질문과 고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서양의 대단한 과학기술자가 무엇을 공부했는지 보면 철학과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 사이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과학철학을 공부하지 못하면 물리학박사를 받을 수 없다. 일본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과학철학을 필수로 이수하게 되어있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 말하는 여러 나라에서는 과학기술자에게 철학을 필수로 가르친다. 반면 우리나라는 철학과 과학의 상관관계에 대해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 관계를 알려주기 위해 최근 저서를 출간했다.

◆ R&D 100조 시대, 진정한 선진국 되려면 철학적 소양 키워야
"우리가 기억하는 위인들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의식 내지 반성하면서 살았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안중근 의사도, 이순신 장군도 행복을 위해 살진 않았죠. 과거 10년의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나, 어리석었나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세상과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사진=김지영 기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선진국으로 불리며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내년이면 R&D100 조 시대를 맞는다. 하지만 국민들이 인식하는 과학기술계 역할은 예전만 못한 것으로 보인다.

늘어나는 R&D에 맞는 연구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그는 "과학기술계에 철학적 소양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연구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연구되는지 깊게 이해하지 못하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따라 하기를 잘했고, 그것을 개선해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선진과학기술을 하려면 달라져야 한다"며 "철학적 생각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창의적 사고를 위해 질문이 중요하다. 문제는 어떻게 질문을 하느냐인데, 그것을 알려면 과학철학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며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그는 "남의 연구도 철학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대학을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샌디에이고 학교 도서관 옆의 인지과학연구센터에서 매주 생물학, 철학자, 교육학, 심리학, 컴퓨터 과학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비판적으로 소통하는 통섭 연구를 30년째 하고 있다.

그는 "창의적인 연구는 통섭 연구와 비판적 사고에서 나온다. 내 지식이 옳은지 알기 위해 다른 학문을 봐야 하고 오류를 발견해야 한다"며 "반면 우리는 철학은 고사하고 남의 연구는 거의 돌아보지 않는다. 독재자가 있으면 그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오류가 지적되지 않으면 개선도 안 된다. 칼 포퍼가 말한 것처럼 열린 사회, 즉 반박 가능한 사회가 돼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행복한 삶을 쫓기보다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질문하라고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위인들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의식 내지 반성하면서 살았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안중근 의사도, 이순신 장군도 행복을 위해 살진 않았죠. 그렇다고 무조건 희생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가치를 생각하며 살자는 이야깁니다. 어렵다면 과거 10년의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나, 어리석었나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세상과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한편, 박 교수는 8월 말 은퇴했다. 그는 그동안 연구하고 강의한 것을 결산하는 총 4권의 책 '철학하는 과학, 과학하는 철학'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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