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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18> 리더십의 핵심은 통찰력이다
  • 기사등록 2021-04-12 16:06:50
  • 기사수정 2021-04-13 15: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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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옛날 중국 주(周)나라에 백락(伯樂)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좋은 말을 알아보는 안목이 대단히 뛰어났다. 그저 한 번 보기만 하면 천리마(千里馬)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루는 준마(駿馬)를 내다 팔려는 사람이 백락을 찾아와서 말했다. “제게 이 준마 한 마리를 팔려고 시장에 나온 지가 오늘로 사흘째인데도, 거들떠보는 사람 하나 없군요. 오셔서 한 번 저의 말을 봐 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백락이 그 말을 직접 보니, 과연 그 말은 그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는 말 주위를 둘러보면서 엉겁결에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 말이 상당히 귀한 준마라고 생각하여 다투어 사려고 했고, 결국 말 주인은 당초 마음먹었던 값의 열 배나 받고 말을 팔았다.  


백락일고(伯樂一顧), 즉 '백락이 한 번 돌아보다.’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명마도 백락을 만나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이다. 훌륭한 재능을 갖춘 사람도 그 재능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갈량(諸葛亮)도 유비(劉備)를 만나고 나서야 그의 지혜가 한껏 발휘됐음을 언뜻 떠올리게 한다.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688-1740, 재위 1713-1740)가 포츠담에 있는 어느 교도소를 방문했다. 왕은 여러 죄수로부터 꼭 사면해 달라는 수많은 간청에 접했다. 한결같이 자기는 아무 죄도 없는데 투옥되었다고 호소했다. (그가 살펴본 바로는 억울하게 갇힌 경우는 거의 없었고, 따라서 사면 요청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다들 왁자지껄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유독 한 죄수만이 아무 말 없이 감방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대 역시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여기에 끌려온 게 아닌가?”하고 왕이 물었다. 그러자 죄수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폐하!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벌을 받아 마땅한 놈입니다요.”


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형무소장에게 근엄하게 말했다. “이 죄수를 즉시 석방하시오. 여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런 죄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소. 짐이 보기에 이 죄수를 그처럼 결백한 사람들 사이에 방치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소! 이 죄인으로 인해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오염되지 않겠느냔 말이요. 그러니 이 자를 당장 여기에서 내보내도록 하시오!”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리더십에 관해 다양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많은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국가 고위직 인사나 정치인들, 특히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평가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바람직한 리더십의 방향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설령 이상적 리더십의 요소들을 충분히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지도자가 그런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처럼 완벽에 가까운 인물은 매우 드물게 출현했다. 그리고 이상형으로 평가되는 ‘위대한 지도자들’ 역시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 이상으로 신비화 또는 미화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상적 리더십의 요건 말고 오히려 리더십의 최소 요건을 따져보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놓더라도 이런 것은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탐구해보는 것이다. 


위의 두 편의 이야기는, 리더십의 핵심은 결국 명철(明哲)에 귀착됨을 말해준다. 굳이 나누자면, 백락의 이야기는 ‘인재(人材)’와 관련하여,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일화는 ‘문제’ 또는 ‘일’과 관련하여 명철함이 지닌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백락의 이야기는 탁월한 능력자를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이나 분별력을 구비하고 활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준다. 물론 천리마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더라도 실제로 천리마가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명철함을 갖추고(더 정확히 말하면 갖추려고 힘쓰고) 열심히 찾을 때, 천리마는 아닐지언정 ‘오백리마(馬)’나 ‘삼백리마(馬)’라도 구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일화는 문제의 진정한 본질과, 그런 본질을 흐리게 하는 지엽적 요소들을 명쾌히 가를 줄 아는 명철함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명철이란 결국 ‘나무들’만이 아니라 ‘숲’을 볼 줄 아는 능력, 부분과 전체,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 사이에서 유연하게 균형을 잡는 능력인 것이다. 한마디로, 명철은 통찰력의 다른 이름이다. 


‘지도자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단순 소박해 보이지만 실제로 충족시키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것은 리더십의 다양한 필수적 요소들을 포괄하는 총체적 특성이자 리더십의 핵심적 요건이기 때문이다.


요즘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장차관은 물론이고 입법부와 사법부의 (최)고위직 인사들에게서 명철함이나 통찰력이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의 실망스런 행태들이 너무나 흔히 발견된다. 이들이 ‘통찰력(명철)의 싹’ 비슷한 거라도 지니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참으로 간절하다. 이런 바람이 필자만의 지나친 기대, 턱없는 희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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