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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처벌법을 제·개정할 때 들리는 집단적 반발 중의 하나가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목소리다. 정부와 여당이 4월 국회에서 공직자 투기근절 제도화 수준을 더 높이는 방안으로 공직자의 재산등록 의무를 모든 공무원으로 확대하고 재산을 공개하도록 추가 입법하겠다고 발표하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LH 사태로 불거진 공직자 등의 부동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당정의 처방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잠재적 투기꾼으로 몰아세운다는 비난, 부동산 투기와는 거리가 먼 하위직 공무원까지 싸잡아 잠재적 범죄인으로 보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는 반응, 그리고 교사의 재산이 공개되면 개인정보 노출로 범죄에 악용되거나 재산 수준에 따른 교사 평판 등 교권 침해의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황당한 지적까지 반발이 심상찮다. 

하긴 이런 저항은 늘 있었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법정 의무화하자 우리가 무슨 성범죄자냐고 반발하기도 했고, ‘김영란법’ 적용대상을 사립 교원과 언론 종사자로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과정에서도 들먹였던 반론이다. 야당도 가세해 비판보다는 갈등을 부추긴다. 언론은 공시생의 불만까지 전하면서 마치 공직사회 전체가 불만인 것처럼 포장한다.

형법은 잠재적 범죄자를 상정한다. 절도, 강간, 살인, 뇌물 등을 가정해 법정형을 정해놓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도 우리가 무슨 범죄자냐고 반발하지도 않는다. 공무원은 뇌물죄의 주체로 규정되어 있고, 부정청탁금지법의 적용대상이다. 그렇다고 공무원 모두를 잠재적 부패범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공직사회 전체를 부패집단으로 매도하는 처벌 규정도 아니다. 예방이 목적이고 실제 범죄가 발생할 때를 대비한 처벌법이다.


대다수 공직자는 처벌 규정이 있든, 없든 금품이나 부정 청탁으로 매수당하지 않고 공직을 공정하게 수행한다. 그러나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불법행위를 상정해 보는 것이다.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행위도 있지만, 의무를 부과하거나 공직윤리에 맡기기도 한다. 공무원이 직업윤리로서의 행동규범과 기준을 자발적으로 설정하여 이에 따라 행동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자율적 규제방식이다. 


그러나 공직윤리와 공직자의 양심에 맡기기에 부족하면 법으로 강제한다. 공직윤리법이 그렇다. 일정 직급 이상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하고, 일정 직급 이상의 공직자는 재산공개도 해야 한다. 일정 가액 이상의 주식은 백지신탁 대상이다. 취업·행위 제한도 있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한다. 부정청탁금지법의 적용도 받는다. 이렇듯 공직자는 여러 가지 법상 의무를 부담하고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


공직자 등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강력하고 다양한 규제를 받는 이유는 공직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하기 위함이다. 처벌이 아니라 예방 차원이다. 부정부패는 예방이 중요하다. 청렴이 공직윤리의 핵심이자 목민관의 기본임무임을 알지만, 실천이 문제다. 


늘 마음에 두고 경계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법과 제도가 있는 것이다. 살인이나 절도와 같은 윤리적 색채가 강한 범죄는 처벌법이 있든, 없든 잘 지킨다. 그러나 업무와 관련한 정보를 이용한 사익추구나 금품수수와 같은 범죄는 윤리와 양심이 걸러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처벌법규를 공포하고 형벌로 위협한다. 일종의 겁주기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공직사회가 부정과 부패로 국민의 불신 대상임은 부인할 수 없다. 고위직이든, 하위직이든 마찬가지다. 국민적 공분이 높아진 기회에 공직사회를 투명하고 맑게 할 체계를 완비해야 한다. 법망이 느슨하거나 감시·감독이 허술해서는 안 된다. 예방효과를 거두려면 법과 제도의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법을 신뢰하고 지키기 때문이다. 


공직윤리법의 적용대상은 제한적이다. 이해충돌방지법도 없다. 보완과 강화가 필요하다. 공직윤리법상 재산등록대상 및 공개대상을 확대하고 등록재산의 심사 강화도 필요하다.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규제하기 위해 사적 이해 관계자를 신고하고 이해충돌이 있는 업무를 회피하도록 하는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직무상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 규정을 두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별도의 국회법 개정도 필요하다. (경향신문 2021.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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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4-06 18: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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