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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준교수의 귀농일기> "은퇴 후 편히 살고 싶었는데... 이 무슨 고생? "
  • 기사등록 2020-09-16 10:38:07
  • 기사수정 2020-09-17 11: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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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새벽 2시에 깨서 지금까지 추석 사과 선물세트 배송 주소 정리하다 너무 눈이 아파 잠시 쉬면서 포스팅했다. 최근엔 취침 시간이 저녁 9시쯤에서 8시로 당겨졌다. 

사과 따는 거 도와주고, 추석 선물 포장재 사러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너무 피곤해 저녁은 대충 때우고 그냥 멍청히 TV를  켜 놓은채 8시 넘으면 고꾸라진다. 


정말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2년 전 추석 때는 어머님이 고관절 수술 후 입원해 계실 때라 입원실에서 먹고 자고 간병하면서 1,000 박스가 넘는  추석 배송을 다 했었다.


아침에 주간 간병인과 교대해 과수원 집으로 와 전 날 입원실에서 밤새 정리한 택배 송장  프린트 하고, 창고로 올라가 선물 박스 포장하고 송장(送狀) 붙여 택배회사 트럭에 싣고 나면 주간 간병인과 교대할 저녁시간이 된다.


 그럼 헐레벌떡 병원으로 와 어머님 저녁 챙겨드리고 야간 당직 간병을 했다. 치매 특유의 옆 사람 괴롭히기가 특징인 어머니 때문에 밤새 수 없이 이리 눕혀드리고 저리 자세 바꾸고, 물 드리고, 기저귀 갈고, 닦아 드리고 등등 하면서도 추석 배송을 거뜬히 해냈다.


근데 올해는 주문이 적어져(ㅠ) 절반도 못하면서,  그리고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간병도 안 하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못 견디겠다. 석양에 지는 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뚝 떨어지는 것처럼 인생 황혼기 체력은 정말 한 해가 다른가 보다. 


앉아 포스팅 하는 거실 소파 맞은 편엔 어머님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아이고 어머니!  아들 이 쌩 고생 시키려고 과수원 남겨 주셨나요? 사과가 좀 나오면 사과 값이 똥 값이고, 사과 값이 좀 오르면 사과가 안 나오고...


하긴 전체적으로 사과 흉년이니 사과 값이 오를 수밖에! 어제 홍로 다 따고 오늘부터 선과(選果)해 포장하면서 일요일까지 사과 배송 끝내고, 월요일부터 또 다른 추석사과 품종인 히로사끼와 양광을 수확해 얼른 주워 담아 다음주 금요일 전에 추석배송을 마쳐야 한다.


 이 와중에 주유소, 편의점 직원 애들 2명의 과외를 각각 두 시간씩 하루 네 시간 해 준다. 너무 피곤해 가르치면서 반은 졸고 있다. 더구나 한 놈은 고 2인데 영어는 뭐 그냥 해 주면 되는데 수학까지 해 달라고 해 낑낑대며 나도 공부해 가르치고 있다.


 50년 전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용을 공부해 가르치려니 머리에 쥐가 난다. 그러니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야 내 일 정리하고 수학공부 할 시간이 된다. 오후엔 이 두 놈 4시간 동안 가르치다 보면 시간이 훌렁 다 간다.


아!  정말 나도 이젠 쉬고 싶다. 교수 시절에는 무슨 일이 그리 많고 바빴었는지,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푸념도 했었다. 은퇴 후 안락한 삶을 바랬는데 그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가 않다.


그런데 어찌 하랴! 과수원 해서 먹고 살려면 추석 대목을 잘 봐야 하는데. 다시 힘 내고 오늘 일을 힘차게 시작해야지. 일단 잠시 눈 좀 붙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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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9-16 10: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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