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노동의 강도가 일에 따라 다르다. 강의를 오래해서 그런지 서서 일하는 건 잘 버틴다. 사과 선별기를 돌려 크기대로 분류되는 사과를 운반용 컨테이너에 넣는 일은 오랜 시간동안 서서해야 하고, 또 끊임 없이 사과가 선별 접시에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잠시도 쉴 수가 없다. 내가 이건 예상보다 오래 잘 한다.


그런데 어제 비가 온 후라 추가로 텃 밭에 모종을 몇 개(말 그대로 10개 미만) 심었다. 그냥 호미로 비에 젖어 물렁한 땅을 한 번 찍어 판 다음 모종을 심고 덮어주면 끝인데 정말 쭈구리고 일 하려니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가뜩이나 비대한 몸을 구부려서 일하니 몇 번 호미질에 하늘이 노랗다.


땅이 축축해 철푸덕 앉아서 할 수도 없고...서서 쇠스랑으로 이랑을 갈아 엎어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힘들지만 쉬엄쉬엄 하면서 한 시간 정도도 버틴다. 그런데 앉아서 하는 일은 10분도 못하겠다 정말 농부 자질이 없는가 보다.


이나저나 비가 와서 과수원 잡초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크는데 사륜구동 승용 예초기를 농기계 임대사업소에서 빌려 오려니, 충주시 관내 양쪽 사업소 모두 다 고장이란다. 이전에도 빌리려면 툭하면 고장이라 해서 애를 태웠는데 ... 언제 고쳐지냐고 물었더니 기약이 없단다.  내구연한이 다 차서 내년에 새 걸 사 온다나?


이런 농기계는 내구연한을 매뉴얼에 있는대로 다 꽉 채우지 말고 한 2~3년 앞서 새 기계 하나 사서 낡은 기계와 병행해 쓰면 수리 불가로 임대 못해 주는 불상사가 안 생길텐데. 농수산부 인터넷 신문고나 뚜드려 볼까? 사륜구동 승용예초기는 대당 가격이 2천만원이 훌쩍 넘는다. 과수원에서 한 철에 4~5회 정도밖에 안 쓰는데 사기에는 부담이 된다.


물론 사과 값이 좋아 장사가 잘되면 문제가 아닌데 사과 가격은 대세 하락기라 매년 생산비는 오르는데 사과 값은 반대로 떨어지고 있다. 오늘도 과수원에 올라가 보니 "약 오르지?" 하는 표정으로 이 놈의 잡초들이 무성하게 날 째려 보고 있다. 성질 같으면 확 제초제를 뿌려 버릴까 보다. 


이웃 음성이나 괴산군 관내 농기계 임대 사업소에 가 볼까? 아니지 지금 화상병 때문에 난리인데 괜히 잘 못 빌려 와 병이나 옮으면 큰 일 난다 그렇게 되면 난 쫄닥 망한다. 진짜 고민이다. 그렇다고 이 넒은 과수원을 등에 지고 풀 깍는 동력예초기로  깍을 수도 없고. 우리집에 있는 건 뭐 성묘철 되면 여자도 한 손으로 작동할 수 있어요 하면서 홈 쇼핑에서 선전하는 그런 것과는 종류가 다르다 .


휘발유 앤진으로 구동하는 heavy-duty 타입이다. 무게도 무게지만 30분만 돌리면 엔진열 때문에 등이 타들어 간다. 아, 어떻게 하지? 누가 읽으라고 준 자연재배 농법이란 책을 보니 잡초와 공생하며 농사 지으라는 데 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있다. 잡초가 영양분 다 빨아먹으면 나무는 비실대고 사과는 작아져 제 값을 못 받는다.


사과 과수원 1년 매출의 2/3이상이 추석, 설 명절 때 선물용, 제수용 판매인데 누가 자잘한 사과를 선물로 받겠는가? 무조건 커야한다 그리고 홍동백서라는 제사상 진설 원칙(근거가 없다고 함)때문에 명절에 사과가 많이 팔리는건 좋은데 이 때도 무조건 커야 한다. 그래야 조상님께서 흐뭇해 하신다나? 사실 큰 과가 작은 거에 비해 맛이 없다. 


자연재배 사과농원의 새로운 캠페인 구호를 이렇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큰 사과만 먹지 말고 작은 사과도 먹어주자! 조상님께 올린 사과  크건작건 잘 드신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0-06-26 18:12:25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유니세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